신선하고 소탈했던 "대통령과의 대화" 시사


  '대통령과의 대화' 생방송에서 세종시 수정안과 4대강 등 민감한 사안을 직접 설명하자 시민들 사이에선 대체로 '공감한다'는 반응이 많았고, 일부에선 `진솔한 소통 방식이 신선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의약 분야 회사에서 일한다는 장정은(32)씨는 "세종시와 관련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 불신이 컸지만, 대통령이사과하는 모습에 생각이 다소 바뀌었다"며 "나라의 발전을 위해 세종시 계획을 바꿔야 했다는 설명에 수긍이 간다"고 말했다.

   공사 직원인 강현근(43)씨도 "정치적 대립이 컸던 문제를 전반적으로 잘 설명했다고 본다"며 "4대 강 사업의 경우도 수질개선이나 생태계 개선 등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사업에 대한 반감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성열(36.회사원)씨는 "한 국가의 수장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내면을 보여준 점이 신선했다"며 "다만 충청 지역의 여론을 끌어안으려면 앞으로도 더 많은 소통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람들은 달나라에 가서 대통령 연설을 보고 온 건가.. 내가 봤던 대통령 연설엔 인간으로서의 내면도, 효과적으로 전달된 메시지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도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이 병신 같은 애널서킹 기사는 이렇게 따로 포스팅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명박의 언론 장악에 대한 자료로 쓰임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연합뉴스는 진짜 이명박의 개로 전락해버렸구나..

  참고로 대통령 연설에 대한 진짜 얘기는 이 바로 아래 포스트를 참고해주시길.

  p.s. 근데 이게 내일 아침 조중동의 1면 기사가 되어 있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은 뭘까.

그건 "대화"도, 뭣도 아니었다

  지난 1월의 원탁대화에서 우리는 이미 이명박이 말하는 "대화"란 뭘 말하는 것인지 깨달은 바 있다. 근데 어리석은 나는 이번 대화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말았고, 결국엔 한 번 더 뒤통수를 맞았다. 전보다 더 세게 맞았다.
 
  첫째로, 이건 대화가 아니다. 토론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그냥 대통령의 연설, 주장, 훈계였을 뿐이다. 이 같잖은 방송을 처음 시작할 때 "대화" "토론"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대화 혹은 토론이 성립하려면 적극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그런데 오늘의 "토론"엔 질문과 답변만이 있었다. 그 이상은 없었다. 끽해야 질문→답변→제2질문→답변이었다. 2시간짜리 방송을 보는 내내 이명박의 발언에 대한 직접적인, 그리고 날카로운 반박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패널들은 제 역할을 조금도 하지 못했다. 패널 중 하나인 중앙일보 정치부 논설위원은 (예상대로) 마치 이명박이 할 말을 대신 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친박계열을 두고 한나라당 내 "비주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기업가로 보이는 한 여자 패널은 왜 이 자리에 불렀는지 궁금했으며, 큰 기대를 걸었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마저도 날카로운 질문은 고사하고 반박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펜으로 뭔가 열심히 적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결국 김호기 교수가 한 건 없다. 100분 토론에서 보여줬던 그 모습은 다 어디로 갔는가.

  또한 억울했던 것은, 이명박은 자신이 필요한 모든 자료를 가져와서 "주장"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 구체적인 자료 제시를 할 기회도 없었고, 반박을 할 여지도 없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 나온 영상물은 대체 뭔가? 물고기 로봇에서 좀 뿜었는데, 여하간 이건 이번 방송이 "대화"의 정체성을 잃고 "연설"로 전락해버렸다는 걸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 이명박이 2시간 내내 가장 많이 입에 담았던 단어는 "경제"였다. 누가 CEO출신 아니랄까봐, 머리에 돈이라는 한 글자만 들어 있는 듯했다. 그래, 돈 좋지. 경제 좋지. 근데 경제가 전부는 아니거든. 국민들도 돈만 쥐어주면 만사 OK인 돼지들이 아니거든.

  100명의 시민들은 왜 불렀나 궁금하다. 시민들이 나와서 질문할 시간 딱 30분 줬다. 아니, 그마저도 대부분의 시간을 이명박의 궤변을 듣는데 써야만 했다. 게다가 이게 토크쇼인가? 연예인들은 대체 무슨 의도로 내보낸 것인가? 오영실, 박현빈, 선우용녀.. 이만큼 한심할 데가 없더라. 귀한 시민들의 30분의 일부를 저 쓰레기들의 말장난으로 허비해야했다. 질문의 수준도 정말이지 별 거 없었고, 애초에 이런 자리에 나와서 굳이 대통령 면전에 대고 물어볼만한 대단한 사안도 아니었다. 박현빈은 "사모님께서 요리를 그렇게 잘하신다면서요?"에, 선우용녀는 내복드립. 무슨 이명박을 위한 기쁨조인가? 연예인 패널이랍시고 나온 사람들의 지능 그리고 내 귀를 의심했다. 또 처음부터 논란이었던 35개 채널 동시 생중계. 이명박과 친구들이 가장 싫어하는 북한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가 조선민주인민공화국인가, 온 국민들이 일방적으로 대통령 연설을 들어야만 하게?

  "대화"에 임하는 이명박의 태도 자체도 문제다. 말은 간드러지게 하는데, 그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속내가 죄 비춰보인다. 이명박은 세종시 문제에 대해 충청도민들을 마치 감정만 앞서고 별 생각은 없는 멍청이들로 분류하는 듯하다. (방송을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하리라 믿는다) 그러면서 자신은 오랜 시간 숙고했고,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 청계천과 중앙버스차로제가 그러했듯이, 조금만 지나면 나의 진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그렇게 말해줘도 자신의 무지함을 모른다. 오히려 무지함을 포장하는 능력, 자신의 주장을 세게 밀고 나오는 능력, 자신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그 오만함은 더욱 더 강하고 견고해졌다.

   둘째로, 오늘 대통령 연설(더 이상 대화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다)은 이명박의 사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4대강 사업을 이야기하면서 이명박은 지속적으로 자신이 "경험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 말인 즉슨, 나는 이미 모든 걸 경험해봤으니 누구보다 이 사안에 대해 더 박식하고, 때문에 내가 하는 일에 토달지 말라는 거다. 세종시도 마찬가지다. "나도 원안대로 가면 편하다. 하지만 나라와 국민을 생각해서 이렇게 머리 싸매고 수정하고자 하는 거다." 기가 막혀서. 그러니까 결국 세종시 원안을 추진하지 않는 이유는 나라와 국민을 사랑해서이다. 진짜 포장 그럴듯하게 하셨다. 또한 세종시 관련해서 가장 어이 없었던 것이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면 그 넓은 부지 안에서 살던 사람들이 적은 보상금을 받고 내쫓겨야 하는데, 그런 걸 보고 있을 수가 없다"는 논리였다. 아니, 그렇게 마음이 하해와 같으신 분들께서 용산에 경찰특공대를 보내고 4대강 유역에서 수십 년 유기농 농사하시던 분들을 강제로 쫓아내시나? 대놓고 국민을 농락하는 것인가? 수천만 국민이 이 대목에서 크게 비웃었을 거라 생각한다. 한편으론 서글픔에 눈물을 흘렸을 거라 생각한다. 제 편할 때만 국민 생각, 나라 걱정이다. 참으로 비열하고 치사한 새끼가 아닐 수 없다. 자족이 안 된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구상되어 있었던 자족계획 -자족기능으로 35만 명을 추가로 끌어들인다- 은 대체 어디에 버려둔 건지. 경제발전, 효율성 어쩌고 하는데 애초에 효율성 따지면 국토균형발전은 불가능하다. 경제적 효율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 국토균형발전을 하고자 하는 것은, 국토균형발전이 이루어짐으로써 생기는 이익이 경제발전의 그것보다 더 크기 때문인 것을. 경제논리로 모든 것을 생각하려니까 답이 안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또, 오늘 세종시 수정에 관련해서 대국민 사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글쎄, 난 사과 비슷한 건 한 번도 못 들었는데?

  셋째로, 이명박은 토론에 필요한 기본적인 논리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4대강을 우려하는 수많은 환경단체와 학자들은 무시하고, 금세기 한국의 기술력으로는 환경오염 문제를 당연히 극복 가능하다고 한다. 보 만드는 기술력이 그렇게 훌륭하면 당연히 찬성했겠지. 뭐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한강 수질이 보 건설 이후 개선되었다고 하고, 4대강 정비로 인해 많은 수해복구금이 절약될 거라고 하고, 수질이 개선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미 수십 번 반박된 내용들이다. 귀가 없는 건가, 이해를 못하는 건가. 시민 패널 중 하나가 "취업이 힘들어요. 벤쳐를 하라고 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무리예요"라고 하니 답변이랍시고 하는 말이 "아직 젊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중소기업으로도 눈을 돌려보세요. 그렇다고 눈을 낮추란 말은 아닙니다"다. 그래서 대체 어쩌라고? 벤쳐 하다가 쫄딱 망하라고? 대기업들은 경력사원들 좋아하니까 중소기업 가서 5년쯤 일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지라고? 게다가 정작 이명박 본인도 BBK 만들었다가 때려쳤잖아? 그 뒤의 질문들도 마찬가지였다. 동문서답과 논점왜곡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명박이었다.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을 자신의 논리에 끼워맞추는 건 또 어떻고.

  이밖에도 이명박의 수많은 궤변들은 그 수준이 참으로 한심한 것들이었고, 자기합리화와 오만함은 도저히 눈을 뜨고 못 봐줄 지경이었다. 까이고 까여서 닳대로 닳은 그 진부한 떡밥들을 끈질기게 꺼내드는 그 용기만큼은 높게 쳐주고 싶었다만.

  귀찮다. 결론이나 내보자.


  1. 오늘의 대통령과의 대화는 "대화"가 아닌 "연설(혹은 변명 혹은 주장)"이었으며, 새로운 내용도, 이치에 맞는 내용도 하나도 발견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전파낭비였다.
  2. 이명박의 사고관을 그대로 반영한, 틀에 맞춘, 그리고 미리 짜여진 연설의 진행과 전 방송사 장악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3. 연예인을 이용해 물타기하려는 시도 또한 역겨웠으며, 결국 이명박에게 국민과의 대화 의지란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는 이딴 방송 보고 분노하는 일 없으리라. 치킨 한 마리 시켜놓고 방송 보는 내내 먹었는데,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다 토해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다시는 터놓고 대화하겠다는 이명박의 사탕발림에 속지 않으리라, 난 그렇게 다짐한다.

  p.s. 더러운 연합뉴스, 벌써 이런 기사를.. 미쳤나, 이것들이 정말로.
  <대통령 사과.설득에 시민들 '공감' 우세>

숫자놀음, 트위터, 인간소외 잡담

  사실 나는 “트위터란 어때야 한다” “블로그란 어때야 한다”는 식의 글들이 굉장히 싫다. 그럼에도 이런 재미없고 감동도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부분, 트위터와 블로그는 어떤 존재인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우리가 한 번쯤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트위터는 소통을 기반으로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다. 난 적어도 트위터상에서는 일방적인 발언이나 일방적인 추종이 아닌, 서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의 상호작용이 이뤄져야만 한다고 본다. 나는 웬만한 “스타 트위터리안”들의 계정은 follow하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들의 말을 듣기만 하는 위치에 놓여야 하는 게 싫기 때문이다. 간혹 메시지를 날려봤자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느낌만 들고. 김연아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도 어차피 답변은 오지 않을 테고, 김형오 국회의장에게는 아무리 비난을 퍼부어도 반박의 답글 한 마디를 못 들을 수 없었다. 기성매체, 즉 TV와 라디오, 신문에서나 나타나는 이런 일방적 정보전달은 인터넷 사회에서 별 의미가 없다. 적극적인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트위터에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건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다.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이다. 트위터의 중심엔 기존 매체에서 숱하게 접해왔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만큼 아는 유명인들이 아닌 일반인이 있어야 한다. 소통은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놓여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기존 매체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일방적인 추종 구도를 깨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던 SNS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니, 답답하지 않을 수 있을까. 트위터를 쓰는 건 개개인 나름이고, 특정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공급받는 창구로써 쓰고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서야 그냥 리더기에 RSS Feed 주소를 등록해놓고 최신 글을 받아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유명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SNS는 의미가 없다. 또한 유명인들을 트위터의 중심에 놓고자 하는 분위기도 사라져야 한다.

  트위터에서 “숫자”는 여러 의미를 가진다. 트위터에서 “숫자”는 열성과 인기 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로써 쓰인다. 이건 다른 서비스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특히 싸이월드의 “투데이”나 “일촌수”) 트위터의 경우 이 숫자들의 의미가 좀 더 재미있는, 그리고 복잡한 형태로 세분화된다. 그리고 이를 이용한 서비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최근 한국에 생긴 “코리안 트위터즈”라는 게 그 한 예다. 블로거 민노씨는 이 서비스를 두고 “줄세우기”라며 비판한 바 있다. 블로거 egoing은 한 걸음 나아가서, 이 숫자들이 계급성을 띠게 된다고 말했다. (1) (2) (3) 나는 이런 입장에 동의한다. 다시금 말하지만 소통은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서열화는 그런 동등한 관계설정을 어렵게 할뿐더러, “소통의 질”보다는 “양”을 먼저 따지는 문화마저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이 서비스를 살펴보면, 사람들의 “순위”를 매기는 기준은 오직 follower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평가대상은 모두 부정된다. 게다가 소통의 부익부빈익빈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코리안 트위터즈 상위에 표시되는 사람들은 우리가 이미 웬만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Follower의 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바꿔 말하면, 이렇게 굳이 따로 서비스를 만들어가면서 더 노출시켜줄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는 소리다. 대체 이 서비스가 원하는 게 뭔가.

  시사in 그리고 독설닷컴의 고재열 기자. (@dogsul) 처음 트위터를 시작할 때 일정시간 안에 follower 1000명 채우기 내기를 하며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고재열 기자는 당시 “일단 소통의 장을 넓혀놓는 게 급선무였다”는 식으로 이를 피해가긴 했지만, 최근 또 한 번 follower 수를 이용한 내기를 벌였다. 내가 제목에서 말한 “숫자놀음”은 바로 이걸 두고 한 말이다. 이건 그냥 숫자놀음이다. 여기에서는 follower에 대한 어떤 배려심이나 감사, 존중도 찾아볼 수가 없다. Follower는 그냥 숫자가 아니다. 어떤 한 사람이 당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소리고, 당신과의 소통을 원한다는 의미다. 당신의 말을 들을 준비를 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렇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개개인의 following이 단순히 유희 혹은 과시를 위한 follower 숫자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는 순간, 소셜 네트워크가 지닌 “소통”이라는 가치는 사망선고를 받는다. 적어도 연예인들은 자신의 팬 숫자에 감사함이라도 갖는다지만, 고재열의 경우는 뭔가? 나는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싫고 서글프다. 또, 나는 서로의 following이 그보다는 훨씬 귀한 대접을 받았으면 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그 “귀한 대접”을 요구했으면 좋겠다. 트위터에 중심에 인간이 아닌 숫자가 놓이게 되는 건 잘못된 것이다. 모순이다. 목적 전치이자, 인간 소외다.

  통장 잔고와 외제차 보유수가 권력이 되는 이 사회에서, 트위터 안에서까지 이렇게 지극히 무의미하고 지극히 세속적인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가? 나 또한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 이 잔인한 인간소외와 서열화를 피해갈 수 있는 성역은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두서없이 트위터 등지에 휘갈겼던 말들을 정리한 글. 그런데 정리해도 여전히 두서 없다.
  *본문 중 존칭 생략에 대해서는 양해를.. :)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