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교육감이 벌금형을 선고받고 서울시 교육감의 자리로 돌아온 후 결국 공포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아직도 말이 많다. 나는 “왜 이렇게 당연한 게 논란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이해할 수 없는 입장이긴 하지만 말이다. 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져야 하는가, 그리고 그 중에서도, 왜 체벌이 금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논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이 글은 내가 트위터에 산발적으로 올렸던 트윗을 정리하고, 보충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권리를 가지고,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든 이것을 보장받을 권리를 지닌다. 이른바 천부인권이다. 인권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된다. 갓 태어난 아기는 물론 연쇄살인범도 인권을 갖고, 보장받을 권리를 지닌다. 체벌의 대상이 되는 학생도 마찬가지다. 학생도 인권을 당연히 갖고 있고, 이를 주장할 수 있으며, 보장받아야 하고, 보호받아야 한다. 체벌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체벌은 학생 인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부모에 의한 가정 폭력이, 자식에게 커다란 정신적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자식으로 하여금 폭력적인 성향을 갖도록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넘칠 정도로 많다. 이런 연구결과가 옳지 않다며 반론을 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체로 이런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있고, 또 공감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교사에 의한 폭력”이 학생의 폭력성을 재생산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는 것이다. 대체 왜일까? 부모에 의한 폭력과 교사에 의한 폭력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혹자는 말한다. “체벌”은 교육의 수단이며, 따라서 인권침해나 폭력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교육의 수단”이라는 이유에서라면, 정말 학생의 기본적인 신체권을 공공연히 침해하고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범죄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모든 인간은 체포당하는 순간부터 재판을 받아 투옥되고 형을 집행받는 그 모든 순간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는다. 간수가 “교화를 위해서” 또는 “교육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수형자에게 체벌을 가할 수 있는가? 용의자에게 함부로 폭행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경찰이나 검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철저한 규율 안에서, 오직 필요에 따라, 정해진 만큼의 인권을 “제한”한다. 이것은 국민이 국회를 통해, 그리고 헌법을 통해 공권력에 위임한 “권한”이고,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전 인류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단 앞서 말했듯이 그들도 함부로 그들의 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정해진 바에 따라 엄격하게 인권 제한을 행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인권의 제한을 넘어서 “침해”한다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처벌의 대상이 된다. (물론 이건 이상적인 이야기고, 현실은 다르지만, 그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교사들을 보자. “체벌”을 통해, 그들은 아주 당연한 듯이 학생들의 인권을 위협한다. 체벌에도 규정이 있긴 하다. 그런데 그 규정이란 게 구속력이 없는데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를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있고, 학생들로서도 교사들의 이런 문제를 드러내놓고 지적할 수 있는 어떤 좋은 방법도 없다. 게다가 체벌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기준에 의한다. 같은 수준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체벌의 수준이 다를 수 있고, 잘못에 비해 지나치게 강한 강도의 체벌이 가해질 수 있으며 (물론 체벌 자체에 반대하는 내 기준으로보면, 모든 수준의 체벌은 부당하다) 혹은 교사 개인의 착각이나 오해에서 아무 죄 없는 학생에게 체벌을 가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교사들의 체벌의 수위를 개개의 사안에 따라 공적으로 논해서 결정하거나,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전무하다는 데 있다. 즉, 공권력이나 위원회 통한 징계와 같은 “공적 제재”에 반해, 교사들의 체벌은 “사적 제재”의 영역에 속하고, 이런 통제되지 않은 사적 제재는 필연적으로 인권 침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법부조차도 인권을 제약할 땐 강력한 수준의 통제를 받는데, 정작 교사는 아무런 견제나 감시를 받지 않는다.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왜냐면 교사에게는, 학생의 인권을 멋대로 제약할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권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학생인권조례와 체벌 금지에 반대하는 가장 큰 근거는 역시 “교권의 추락”일 것이다. 학생을 체벌로 다스리지 못하면 교권은 추락할 것이고, 이는 대한민국 교육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논리다. 그리고 이는 “틀렸다.” 지금까지는 교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 교권은 교사의 권위에 대한 학생의 존중심에서 비롯되는 권리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교권은, 체벌이란 이름의 폭력을 통해 학생에게 위협을 가함으로써 갖게 되는 “공포”로 만들어진, 일종의 허상에 불과하다. 진정 존경받는 교사라면, 체벌이 없다고 해서 교권이 추락할 리가 없다. 학생들에게 무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교권이 추락했다는 주장은, 교사들의 교권이 체벌 없이는 며칠도 유지되지 못할 정도의 “싸구려”에 불과했다는 자기고백과 다름없다. 교사들은 그동안 학생을 “교육”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력 앞에 “복종”시키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체벌이 없어지니 그동안 억압받고 있었던 자기 주장과 권위에의 저항을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힘에 의존한 교권이 오래 가면 뭐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이건 어찌 보면 “정상화의 과정”이다. 게다가, 교권 “따위”가, “인권”이라는 거대하고 중대한 권리에 우선할 수 없다는 건 대단히 당연한 일이다.
신입 여교사는 왜 학생들로부터 괴롭힘 받는 존재가 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들이 다른 교사들의 “힘”에 지배받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자신보다 약한 신입 여교사를 “힘”으로 지배하는 데서 푸는 것이다. 학교 폭력도 마찬가지다. 학급에서 가장 높은 서열에 위치한 자도, 결국은 “교사”에 의해 지배받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교사-학생이라는 피라미드 관계가 이미 존재하는 사회에서 학생-학생이라는 피라미드 관계가 또 생겨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한 편으로는 어리석다. 군대 내 폭력의 시스템과 다를 바 없다. 이런 “힘의 권력관계”를 교육하는 것은 중독성 강한 온라인 게임이나 드라마가 아닌, 바로 “교사들”이다. 이런 힘의 관계의 교육은 초등학생 때부터, 심하면 유치원 때부터 이루어진다. 아주 어릴 때부터, 교사들의 체벌이 학생들에게 권력구조와 폭력을 학습해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육의 현장”에서,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도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교육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다. 폭력이 폭력을 멈추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는 없다. 학급 붕괴라는 현상 앞에서 가장 크게 반성해야만 하는 것은 바로 교사들 자신이다. 교사들은 이를 깨달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체벌 외의 어떤 수단을 써야만 하는가. 혹자는 말한다. “체벌을 성급하게 금지하기 전에,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만들어놨어야만 한다”고. “학생인권 조례는 너무 시급하다”고. 근데 체벌 금지와 학생인권 보장이 주장되기 시작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두발규제 등과 같은 부분에서 학생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학생 인권 단체에서는 지속적으로 이를 위해 싸워왔으며, 그게 이번 서울시 교육감에 의해 결실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성급한 판단에 의한 정책이었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럼 너희들은 지난 수십 년간 대체 뭘 했니?” 이제 와서 체벌을 대체할 방법이 없다고, 인권의 제약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뻔뻔하다. 교사들은 지난 수십 년간 체벌이라는 가장 편한 도구를 손에 쥐고, 다른 대체 수단을 찾아야 한다는 책임을 방기해 왔다. 그 결과가 지금의 한국이다.
그럼 “교육의 수단”에는, 대체 체벌 말고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나는 “공적 제재”의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본다. 교사들이 체벌과 같은 “사적 제재”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학생들을 다룰 수 있는 “공적 제재”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는 것이다. 이는 외국의 정책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데, 선진국의 학교들은 체벌이 아닌 “징계”를 이용한다. 즉, 부모를 소환하여 학생과 함께 대면을 한다던가, 근신, 정학, 퇴학이라는 처분을 내리는 것이다. 모든 징계는 공적인 문서에 기록되기 때문에 교사가 이 권한을 남용할 수 없고, 또 수위가 높은 징계는 반드시 교사와 학부모 대표로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하며, 이는 학생과 학생의 부모와 충분한 상담이 이루어진 다음에 행해져야 한다. 학생의 잘못에 따라선, 특히 강간이나 살인, 집단에 의한 지속적인 폭력에 대해서는 사법 기관에 맡기는 것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이 과정은 누구 특정 개인의 지극히 자의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체벌”과는 달리, 공적이고 공개적이며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으로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공적 제재”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육에 필요한 것은 바로 제대로 된 “공적 제재” 시스템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비극은, 공적인 제재의 부재를 사적인 제재로 메꾸려고 했기에 생겨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교사들도 한 편으로는 피해자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학생인권조례는 결코 학생들을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방치하자”라는 개념이 아니다. 자유를 보장하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확실하고 엄격한 형태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교복” “두발”과 같은, 지극히 쓸데없고 무의미한 부분, 하지만 눈에 드러나는 부분에 대한 구시대적 제재를 가하는 것을 지나치게 중요시한 바람에, 이를 개인의 자유로 인정하고 허용하고자 하는 학생 인권조례에 대해 학생들을 “방치한다”는 편협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일 테다) 혹자는 이런 말을 했다. 체벌을 하면, 복잡하게 징계에 회부하고 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사건을 종결짓고 뒤끝을 없앨 수 있지 않겠느냐, 라고. 그리고, 문제는 바로 그게 체벌의 핵심적 문제 중 하나라는 것이다. 내가 체벌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벌은, 맞으면 끝난다. 자신의 죄에 대한 면죄부를, 신체권을 일시적으로 포기함으로써 얻고 죄의식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죄를 지은 학생 입장에선 차라리 이게 편하다. 그런데, 만성적인 학교폭력을 비롯한 모든 문제는 바로 이 부분에서 나온다. 학생이 자신의 잘못을 잘못으로 인식하지 않고, 잘못을 하더라도 몇 대 맞는 것으로 자신의 죗값을 전부 치를 수 있다는 식의 학습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체벌을 한다고 한들 학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체벌은 체벌로 인한 “아픔”이 아닌, “공포”를 통해 타자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만성적인 체벌을 통해 공포를 무감각하게 여기게 된다면, 아무리 체벌을 가해도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타인에게 해소하게 하는, 폭력을 조장하는 수단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잘못에 대해선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 그게 징계든, 형사처벌이든. 그런데 지금의 체벌은 “처벌”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인권 침해만 하고 있다는 말이다. 체벌이 제대로 기능했다면, 대체 대한민국 교육현장의 그 수많은 문제들은 왜 생겨났단 말인가? 체벌이 제대로 기능했더라면, 누가 학교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금품을 갈취했겠냐는 말이다.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군부독재 시절,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체벌이 통했을 것이다. 그런 사회였으니까. 개인보다는 전체의 질서가 우선되고, 개인의 권리의 가치보다는 전체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세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가장 값진 가치이고, 이는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다. 왜 학교는 아직도 70-80년대에 머물러 있으려 하는가? 교사들이 개혁해야 할 대상은 학생들이 아니다. 교사들이 개혁해야 할 것은 이 나라의 교육시스템이며, 학교이며, 그리고 그들 자신이다. 체벌은 금지되어야 하고, 이는 충분한 이유와 당위성을 갖고 있음을 난 믿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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