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한 의문

  오늘에서야 버락 오바마 현 미합중국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의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첫 순간 내가 한 말은 "뭐? 농담이지?" 였다.

  오바마 취임 때 나는 많은 것이 변할 거라 생각했다.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부시가 워낙 못했던 탓도 있지만 오바마의 정책이나 정치적 성향은 나의 그것과 많이 일치했고, 어쩌면 그가 나의 롤 모델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었다. 그는 나름대로 국정수행을 잘해나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라크/아프간 전쟁에 관한 부분에서 그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이라크에 파병되는 미군의 숫자는 늘었고, 무인 전투기가 더 많이 개발/투입되었으며, 민간인 피해도 날로 늘어만 갔다. 물론 그 와중에 전사하는 미군의 숫자 또한 늘었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보면 결국 손해가 날 것이 뻔한데, 부시의 정부가 가장 욕을 먹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인데 오바마는 이 부분에 대해 더 오바마스러운, 단호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전쟁에 대해 노엄 촘스키 교수는 모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끔찍한 범죄"라고 규정지었다. 다소 길게 발췌해본다

이라크나 아프간 전쟁에, 부시나 오바마 후원자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 전쟁의 목표는 꽤 명확했다. 이라크를 정복한 뒤 말 잘 듣는 괴뢰 정부를 설립해서, 미국 기업들이 거대 규모의 석유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 지역에 전략 거점을 통제할 수 있는 군사기지를 세우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런 특권을 얻었다. 특히 2007년 11월 당시 부시 대통령은 군대를 이라크에 영원히 주둔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발표했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의 군수업체와 기업이 이라크에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이 목표를 위해 부시 전 대통령은 군사기지 주둔을 위한 협약에 서명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 협약을 아프간에서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2001년 10월 부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그 목표는 아주 명확했다. 탈레반 정권의 전복이 아니었다.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엎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 2001년 10월 당시 미국의 목적은 9·11 테러 혐의자들을 인계받는 것이었다. 탈레반은 증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부시 정부는 그것을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미국은 오사마 빈라덴을 넘겨받기 위해 아프간 전쟁을 도발했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다른 금전적 이익을 막대한 규모로 챙겼다. 이것은 심각한 범죄이다. 오바마 정부 역시 아프가니스탄이 전략상 얼마나 중요한 지역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자기 후원자들의 이익을 위해 다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니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오바마 정부의 끔찍한 범죄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보는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만큼의 비용이 필요할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대부분의 분석가는 미국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나 성공할지도 모른다. 미군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우리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성공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우리가 추궁해야 하는 것은 ‘너희들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혹시 미국의 실수냐고? 그런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가 확실하게 못 박을 것은 미국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강대국들이 행동하는 방식이다. 강대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장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다. 일본에 침략당한 경험이 있는 한국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바마가 핵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중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그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아직 어떤 가시적인 성과도 내지 못한 사람에게, 게다가 한편으론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그 사람에게, 평화에 실제로 공헌했던 몇백 명의 사람을 제치고 노벨 평화상을 줘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건 시기상조이며, 넌센스이며, 노벨상의 권위와 공정성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수상대상 선정이다. 트위터를 이용하는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간단한 투표를 진행한 결과, 약 70%에 이르는 사람들이 오바마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내가 가지는 이런 의문들이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물론 격려 차원에서의 의미는 클 것이다. 많은 기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오바마는 이를 이용해 핵을 없애는데 대한 자신의 입김을 더욱 세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로는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한, 다만 "암흑 물질의 정체를 조사할 방법에 대한 계획서"를 썼을 뿐인 한 천체 물리학자에게 노벨 물리상을 줘버리는 꼴 아니겠는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노벨 평화상이 겨우 이런 것이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p.s 관련 글들. 특히 시사in에서 진행중인 김영미 편집위원의 연재는 꽤나 유익하다.

시사in / 김영미의 오바마와 아프간
Inuit Blogged / 평화가 내린 세상?
백화점에서 놀기 / 오바마노벨 평화상 수상, 오보 아니야?





이명박, 그렇게 무서우면 대통령 관둬라 시사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 한 토막을 짧게만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우연히 보게 된 소식 하나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글을 쓴다.


  단도직입적으로 이명박 당신에게 묻는다. 국민이 그렇게 무서운가? 그렇게 무서우면서 국가의 원수라는 자리는 대체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겁이 많으면서 쏟아지는 수천만의 악플과 비난은 대체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 것인가? 

   이명박의 눈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총이 보인다. 이명박의 눈엔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칼이 보인다. 이명박의 눈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붉은 두건과 붉은 깃발과 타오르는 횃불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잽싸고 완벽하게 시민광장을 봉쇄할 리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을 봉쇄하고 나섰다.

경찰은 18일 서거 소식이 전해진 직후 12개 중대, 800여 명의 전 의경을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주변에 배치해 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내가 눈이 먼 것이 아니라면, 내가 보고 있는 단어들은 분명 "12개 중대" "800여 명 전의경" 그리고 "광장 봉쇄"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도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국민 앞에 떳떳하지 못해서 우리들을 막는가? 우리가 언제 김대중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걸 이명박 탓으로 돌렸나?

 
특히 경찰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속보'가 담긴 한 시민의 대자보를 두 차례나 찢어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오후 3시 5분께 시민 최아무개씨는 수도권지하철 시청역 5번 출구 인근 서울광장에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속보 내용을 담은 대자보를 펼쳐들었다. 하지만 이를 본 경찰 20여명은 최씨를 둘러싼 후 대자보를 빼앗아 찢었다.


경찰, 서울광장 봉쇄하고 'DJ 서거' 대자보 찢어 / 오마이뉴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이건 정신병자들이다. 대체 김대중이란 단어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김대중이란 단어에 얼마나 큰 열등감과 패배감, 트라우마를 갖고 있으면 그의 서거를 애도하는 대자보조차 무서워 찢어버린 것일까? 왜 공포영화 같은 곳에서 단골소재로 쓰이잖는가. 다른 사람들 얼굴에서 '악마'가 보여 극도의 공포감 때문에 자살을 택해버리는 사람들. 이명박은 이 경우와는 다르게 자살을 택하지 않고 그 권력을 이용해 '악마'들을 모조리 처단하려고 든다. 하지만 결국 처단당하는 건 이명박의 눈에만 악마로 보이는 무고한 사람들뿐. 현실이 공포영화 그 자체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가. 무서우면 스스로 그만둬라. 실명인증제 한다고 악플 안 달리는 거 아니고, 광장 막는다고 반대여론 사라지는 거 아니다. 대통령직이 그렇게 심적으로 괴롭고 무서운 자리라면 그냥 포기하기를 진심으로, 간곡하게 권한다. 이렇게 가다간 스트레스로 인해 당신 스스로 미쳐버릴 거다. 이건 내가 당신에게 남은 마지막 동정심을 쥐어짜내어 하는 소리다, 이 찌질한 새끼야.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故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정말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간절히 바란다.



  p.s. 설마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번 서거를 두고 "종북좌파빨갱이세력의 수장 김대중이 드디어 뒈졌다"고 하는 무뇌아들은 없길 진심으로 바란다.  
  p.s. 근데 있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8181734561&code=940100
  p.s. 오전 1시 38분 본진에 올린 글과 동일하게 수정.

입진보

0.     작년 촛불집회 때 꽤나 사랑받았던 말을 꼽아보자면 촛불좀비와 쿨게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쿨게이는 그 활용범위가 꽤나 넓어졌는데, 갈수록 “쿨게이”라는 단어가 왜곡되며 본래 의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즉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사태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쓰여지게 되었다.

1.     이후에 사랑받게 된 단어가 바로 ‘입진보’ ‘자칭진보’가 아닐까 싶다. 입진보는 쓰는 사람들 입장에서 상당히 효과적으로 상대를 무너뜨려버릴 수 있는 욕이다. 진보로서의 정체성을 통째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진보적 가치관을 가지고 이에 따라 움직여온 줄 알았는데, 내가 진보가 아니라고? 내가 입으로만 떠들고 행동은 하지 않는 입진보일 뿐이라고?” 좌파적 가치관을 가진, 특히 이번 정권에 대해 반감이 상당한 진보들로서는 고자가 된 것만큼이나 충격적이고, 또한 불쾌할 것이다. 근데 난 이 “입진보” 혹은 “자칭진보”라는 표현에 대해 할 말이 좀 있다. 이 입진보, 자칭진보라는 표현이 말도 안 되게 많이, 광범위하게, 본 의미와는 관계 없이 쓰이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2.     ‘자칭 진보’라는 표현은 그나마 의미전달이 확실하게 되는데, ‘입진보’는 대체 뭔가. 대략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봤다.

A. 입으로는 진보를 표방하지만 정작 머리에 든 건 없는 부류.
B. 입으로는 진보를 표방하지만 정작 진보를 위한 행동은 조금도 안 하고 떠들기만 하는 부류.
C. 입으로는 진보를 표방하지만 뒤로는 지극히 진보적이지 않은 짓을 하는 부류

혹시 이 밖에 더 ‘입진보’라고 할 만한 케이스가 있을까? 고작해야 이 정도가 해당 표현에 속하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입진보라는 말을 들어야 할 이유를 꼽아보자면.. 굳이 꼽아보자면 A가 되겠구나. 난 멍청하고 무식하니까. 문제는 내가 언제부터 '진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느냐는 건데, 그건 나도 모르겠다. 사실 난 진보를 논할 만한 자격도 딱히 없다. 이명박을 비판하다보니 그냥 어쩌다가 진보라는 이름이 붙어버렸을 뿐.

3.     개인적으로 내가 굉장히 화나는 건 멀쩡한 사람을 가지고 ‘자칭 진보’ ‘입진보’라는 표현을 써서 혼란을 주는 경우다. 간혹 그들은 정말로 불필요한 경우, 혹은 전혀 다른 경우에까지 이런 표현들을 쓴다. 이성적으로 진보를 관찰하고 대안을 제시한답시고 올라오는 글들에도 간혹가다 등장하는 게 바로 이 표현인데, 그때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그래, 까놓고 말해서 지금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등, 진보를 내세우는 세력들 치고 진짜배기 진보라고 할만한 건 별로 없다. 물론 개중에는 진보와는 전혀 입장을 달리하는, 보수적인 사람들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비록 부족하나마 진보를 꿈꾸는, 현실에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해보고자 하는 사람들마저 그 진정성이나 노력을 부정당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분명 그들은 ‘노력’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4.     이글루스든 올블로그든, 블로거를 비롯한 네티즌들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아는 것이 부족하기에 나름대로 ‘진보’를 공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마음은 한없이 진보적이나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좋든 싫든 이 정권에 대한 비판 때문에 '진보'라는 딱지를 타의에 의해 달게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포함하여, 그런 ‘아직은’ 부족한, 그래도 어쨌든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을 싸잡아 ‘자칭 진보’ ‘입진보’ 취급하는 것은 상당히 무례하고,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일 아니겠는가.

5.      이렇게 놓고 보니 “알바”라는 표현과 “입진보”는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나는 이런 이유로 알바라는 표현도 쓰지 않는다. 분명히 나와는 다른, 극우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이 분명 존재할 테고, 그 개개인의 의견과 감정, 가치판단은 무시한 채 알바로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진리경찰 같은 부류는 예외로 하고)

6.     누구의 글에서나 몇 개쯤 찾아볼 수 있는, 개인의 글 속 논리적 모순이나 표현의 오류 등을 꼬투리삼아 ‘입진보’라는 표현을 남발하는 작자들은 굳이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본다. 이 말 저 말을 조금씩 잘라붙여 사실과 본질을 왜곡하며 입진보라는 꼬투리를 제멋대로 달고 히히덕대는 작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미 ‘입진보’란 말은 ‘아마 자기들이 제 입으로 뭔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모르고 있을 철없는 병신들’이라는 의미로 굳어져 있을 테니까 말이다. 괜히 있어보이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그냥 솔직해져라. “좀 아는 척하면서 우루루 몰려가서 사사건건 이명박 까대는 너희 같은 좀비들 꼴을 더 이상 보기 싫으니 이제 좀 닥쳐”라고 하면 서로 행복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7.      입진보, 자칭진보는 필요할 때 쓰이는 비판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어떤 단어를 써서든 욕을 하고 싶다면 차라리 그냥 "어린 진보" "철없는 진보" "현실에서 눈 돌린 진보"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또한 납득 가능한 표현을 써라. 마지막 개인의 인성문제, 개인의 사고방식 오류까지 진보 전체의 문제, 진보 전체의 탓으로 몰고 가는 짓은 무디 삼가줬으면 한다. 이게 입진보라는 표현에 대한 내 생각이고, 바람이다.



  p.s. 사실 요즘처럼 '진보'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때가 없긴 하지만. 애초에 블로고스피어에서 진보 vs 보수 프레임을 논한다는 것부터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 정권이 하는 짓이 맘에 안 들어서 이를 비판하는 사람에게까지 억지로 '진보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공간이니까.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들조차 이 정권을 비판하면 진보 소리 듣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게 목격되는 이 공간에서 이런 논의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p.s. 그렇다면 대체 입진보라는 표현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차라리 이런 떡밥을 쓰시길. 난 강기갑을 싫어하지 않지만, 쌍용차 사태에서 보여준 민노당의 사태해결 능력에 다소 실망했고, 이번 강기갑 초등학교시절 이야기 건은 굳이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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