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오사카시의 시장으로 하시모토 토오루橋下 徹 씨가 취임한 건 지난 12월의 일이다. 그는 시장이 되기 전엔 2008년부터 오사카부의 지사로 직무를 수행해왔고, 폭력단과의 스캔들로 인해 2011년 11월 사임했다.현재는 지역 정당이자 현 오사카부/오사카시의 다수 정당이자 우익 정당인 오사카 유신회의 대표이다. 그는 오사카의 재정상태가 위기임을 선언하고 공무원의 수당을 큰 폭으로 깎는 등의 정책을 수행했다. 또한 ‘지사직이라는 독재자적 직책을 민주적으로 통제받기 위해’ 정보공개실을 설치하는 등 개혁적 행보를 보였으나, 그의 극우적 성향은 뒤이은 행보에서 여실히,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본국 헌법 제 9조는 군사력의 포기, 그리고 침략적 전쟁의 부인을 명문화하고 있다. 그런데 하시모토 씨는 헌법 제 9조를 개헌할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는 지난 2월 트위터에서, 헌법 9조의 개헌 필요성을 주장하며, “(..)하지만, 일본에선, 지진재해에 그렇게나 단결과 협력을 부르짖었음에도 불구하고, 폐기물 처리는 모두 거절. 모든 건 헌법 9조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라는, 논리성이 완전히 결여된 말도 안 되는 트윗을 했다. 그는 또한 지난 24일, 보도진에게 “2년을 들여 의논하고, 국민투표를 한다. 거기까지가 오사카 유신회가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한편, “일본국의 모습을 특징짓는 천황제와 같은 레벨의 문제”라는 인식을 나타내고, “일본인 전체가 헌법 9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오고 있다”라는 말로, 헌법 9조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2008년 도지사로 재임할 당시, 전국학력평가에서 오사카부의 성적이 저조한 것을 보고 오사카부의 교육이 비상사태임을 선언, 이른바 교육계획을 구상한다. 하시모토가 가진 교육론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규제’ 그리고 ‘강제’이며 (“‘교육이란 2만% 강제’다” ),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선 일단 공무원인 교사들을 엄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다. 그 결과가 ‘오사카부 교육기본조례’이다. 이 조례는 교육행정에 대한 도지사의 관여를 명확히 하고, 불량교사를 철저히 제거하는 한편, 학교운영의 효율화를 도모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 그에겐 자유와 인권과 관한 인식이 크게 결여되어 있고, 국가 혹은 집단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모든 개인을 집단에 맞추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재”라는, 리더십에 관한 하시모토의 발언이나, ‘공무원 기미가요 기립제창 조례’는, 그의 전체주의적/권위주의적 의식이 꽤 위험한 수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조례의 정식 명칭은 ‘오사카부의 시설에 설치된 국기의 게양과 교직원에 의한 국가의 제창에 관한 조례’. 교직원들에게는 기미가요 기립제창의 의무가 부여된다. 비록 이 조례는 처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기미가요에 대한 기립제창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할 수 없고, 이에 대한 징계 근거를 만들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지난 2월 말, 조례 이후 처음 있었던 졸업식에서 6개 학교에 8명의 기립제창 거부 교사가 있었고, 오사카부의 교육위원회는 이들을 직업명령 위반으로 징계 처분할 방침을 밝혔다.
게다가 3월 2일에 하시모토 시장은 시 직원의 문신을 금지하는 복무규율을 만들도록 담당부국에 지시했다. 발단은 지난 10월, 한 아동사회복지시설의 남성직원이 성희롱 혐의로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은 일이었다. 해당 직원은 시설 내 아이들에게 자신의 팔에 그려진 문신을 보이며 큰 소리를 내는 등의 행위를 했다 (문신을 보이며 겁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 하시모토씨는 “문신을 한 상태로 정규직원이 될 수 있는 업계가 공무원 이외에 있는가”라는 발언을 하며, 문신을 지우는 시술을 받게끔 하는 방안도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주장인데, 애초에 문신에 대한 부정적 가치판단은 하시모토 개인의 것일 뿐이며, 문신을 한 사람은 공무원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주장도 그 논리가 대단히 조악하다. 게다가, ‘문신을 할 자유’를 강제로 빼앗고 이에 대해 제거 시술을 받게끔 강제한다고 하는 발상은, 인권, 특히 신체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몰상식하다.
이런 하시모토와 오사카 유신회의 행보는 당연하게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비판자 중 한 명 (홋카이도 대학 야마구치 교수)은 그를 파시즘에 빗대어 “하시즘”이라는 표현까지 만들어냈다. 오사카에서 열렸던 집회에서는, 야스쿠니 문제 등 국가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지속적으로 피력해온 철학자 타카하시 교수가 “하시모토 지사의 교육기본조례안은, ‘교육파괴기본조례’라고 말해야만 한다” “지사를 천황으로 하는 천황제라고도 할 수 있는 오사카부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라며 그를 강하게 비판했다. 테즈카야마가쿠인 대학의 야쿠시인 교수는 그를 “양립할 수 없는 군대식 관료주의와 시장원리주의를, 때와 장소에 맞춰 나눠 말한다. 주민을 대체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는가”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인권과 교육 문제 그리고 헌법 9조에 관한 하시모토의 사상에 대한 수많은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그와 오사카 유신회는 인기가 있다. 지난 2011년 11월, 부지사를 관두고 시장선거에 출마하여 다시 시장이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하시모토의 지지율은 나쁘지 않다. 지난 2월 11일, 12일 아사히 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오사카 유신회가 국회에서 영향력을 가질 정도의 의석을 확보했으면 한다는 대답이 무려 54%에 이르렀다. 하시모토와 오사카 유신회는 결코 “극우 꼴통” 수준의 대접을 받고 있지 않았다. 2008년 그의 지지율은 80%에 육박한 적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반응을 봐도, 하시모토의 인기를 알 수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네티즌들의 우경화는 뚜렷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 것을 감안해도 꽤 높은 인기다. 특히 헌법 개정이나, 기미가요 반대 교사에 대한 징계 기사에서는 그의 지지 댓글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인기에 대해, 아사히 신문은 하시모토의 주 비판자인 몇 사람을 취재하여 이유를 물었다. 야마구치 교수 (정치학)는 “기성 정당이 침체된 가운데 정치의 축이 보이지 않으니, 기대가 높아졌다”고 분석한다. 같은 홋카이도 대학의 나카야마 준교수 (정치학)은, “동일본대지진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는 사라지고, 불안한 마음을 안은 국민에게서 ‘구세주대망론(救世主待望論)’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말한다. 정신과의사 카야마 씨는 “흑백으로밖에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 불안을 안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정치가가 지지를 얻는 것은, 유권자가 불안정한 상태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라고 분석한다.
2.
“하시즘”이라는 표현을 봐도 알 수 있듯, 오사카시와 일본 사회를 보면 전형적인 파시즘의 특징들이 드러나고, 과거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된 과정이 현대 일본에 놀랍도록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사회는 제 2세계 대전과 패전에 대한 트라우마와 히스테리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끊임없이 지난 날을 정당화하며, 일본이 천황을 중심으로 단결할 것과 자위대 이상의 무장 세력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만약 그들이 패전하지 않고 독일과 함께 세계를 제패했다면, 국제사회와 역사에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위상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미국이나 타 유럽 국가들에 대한 열등감에 다름 아니다.
3.11 지진재해 이후 일본의 TV에는 ‘힘내자, 일본’ ‘우리는 할 수 있다’ ‘동일본을 응원하자’ 등, 집단의 힘과 협력을 강조하는 선전이 쏟아졌다. 끊임없이 단결을 강조했고, 지진재해가 일어난지 1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동북 지방에 대한 TV프로그램은 협력과 인연, 맺어짐만을 강조하는 대단히 감정적이고 단편적인 형태를 띤다. 물론 그들의 고통에 감정적인 동조를 보이고, 공감하고 해결을 위해 단합하는 건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문제는 지진재해의 본질이 이런 선전들로 인해 가려졌다는 데에 있다. 핵 발전의 안전성과 효율에 대한 본질적 의문, 정부의 대처 방식과 재정 상황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채 감정적으로 동북지방을 구해야 한다는 공허한 외침만이 가득한 것이다. 결국 동북지방의 사태를 수습하는 데 있어서의 정부의 역할보다 국민의 집단적 역할이 강조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정부에 대해 확실한 책임 추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들은 갈 길을 찾을 수 없고,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해 말, ‘국가에 위협이 되는 정보를 유포하는 자’에게 최대 징역 10년을 선고할 수 있는 “비밀보전법”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사건과 관련해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기는 커녕 지속적으로 정보를 은폐하고 축소하려 했다. 이런 일련의 모습들은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고, 특히 최근 제기되고 있는 “4년 내 대지진설” 등은 안 그래도 방사능 때문에 불안한 일본 국민들을 더욱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마르크스 주의 이론가인 탈하이머나 바이다에 따르면, 자본과 노동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기성의 정치판을 갈아엎는 제 3의 세력이 등장하는데, 그 실례가 파시즘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일본 사회에 적용하기 위해 “정부와 시민” 혹은 “자민당과 민주당” “원전 찬성파/반대파”로 치환한다면, 기성의 정치판을 갈아엎는 제 3의 세력은 하시모토 시장이 소속하는 “오사카 유신회”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오사카 유신회의 인기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위에서 야마구치 교수나 나카야마 교수가 지적했듯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다. 50년 넘게 여당으로서 일본을 지배해오던 자민당이 투표로 물러가고, 민주당으로 교체되었지만 사실상 일본 사회가 변화된 부분은 없다. 적어도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원전 사고에 관해, 민주당 내각의 무능함이 드러나고, 재정상태가 지속적으로 악화됨에 따라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은 계속 커져만 갔다. 문제는, 두 거대 정당인 자민당이나 민주당을 대체할만한 세력이 일본 정치판에 딱히 없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의 정치 생태계와도 비슷한데, 두 거대 정당이 버티고 있는 이상 다른 야당들의 힘은 미미해질 수밖에 없고, 국민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두 정당은 항상 다수석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오사카 유신회와 하시모토 지사가 등장한 것이다.
하시모토는 보수 우파였지만, 관료기구와 관련된 그의 정책은 대단히 개혁적 (그리고 급진적)이었다. 이 글의 첫 문단에서도 말했듯, 그는 정보 공개실을 설치하고 공무원의 규모를 크게 줄였으며, 공무원 임금도 큰 폭으로 깎았다. 정보 공개실을 설치함으로 인해 오사카의 정보 투명도는 하위권에서 한번에 최상위권으로 뛰어올랐다. 공무원은 절반을 해고하거나 민영화할 방침임을 밝혔으며, 공무원 임금도 30% 이상 삭감될 예정이다. (버스 기사들의 임금은 이미 큰폭으로 삭감되었다) 이는 현 민주당 일본 정부와는 전혀 반대되는데, 앞서 한 언급에서 알 수 있듯 일본 정부는 지진재해가 발생한 이후 정보 통제를 지속적으로 시도했으며, 재정 상태 악화에 대한 뾰족한 방책을 아직까지도 내놓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정부 하나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과 한 국가 전체를 다루는 건 전혀 다른 문제지만, 정보에 대한 투명성, 결단력, 행동력에서 하시모토는 민주당 정권을 압도한다. 게다가 그에게는 청렴이라는 이미지까지 덧붙여져 있다. 기성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에게 있어 하시모토가 매력적인 이유다.
오사카유신회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다시 보자. 사람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국가와 집단의 가치를 강조하는 정책들을 하나하나 쏟아내고 있다. 그 일련의 정책의 성격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것이 기미가요 기립제창 조례이다. 그들은 강력한 규제와 통제를 이용하여 불확실성과 불안 요소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 문제는, 그런 식의 통제는 반 헌법적/ 반 인권적인 시대적 역행인데다가 시민들의 불안의 본질적 부분을 아무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 우파의 권력 기반은 ‘불안’이다. 이는 일본, 한국, 미국,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적’을 창출해냄으로서 권력기반을 유지하고,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데 대한 정당성을 확보한다. 1930년대에 히틀러는 독일인들이 유대인들과 집시들을 두려워하도록 유도했다. 미국에서는 한동안 소련이 그 역할을 맡았고, 2000년대에 들어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중동지역의 국가들이 미국의 적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 줄곧 북한 (그리고 “공산주의” 이념)이 그 역할을 해왔다. “빨갱이”라고 말하면 인권 유린이 정당화되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고 말하면 반인권적 행위가 서슴없이 이루어져도 반대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일본에서 그 ‘적’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국가 안정성과 아이들의 교육을 위협하는, 애국심 없는 공무원”이다.
오사카 유신회의 이런 프레임 설정은 꽤 성공적이다. 하시모토의 기미가요 기립 조례나 문신 금지 정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조한다. “그들은 우리들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공무원이자,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다. 기미가요를 제창하지 않는다는 반국가적 사상을 학생들에게 주입함으로서 국가를 불안하게 한다”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부정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면 통제하는 게 맞다”는 식이다. 여기에 헌법에서 보장된 사상/양심의 자유나, 신체의 자유와 같은, 보다 높은 수준의 가치에 대한 고찰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이런 일련의 논리에서 교사로 대표되는 개인은 국가와 집단의 거대 가치와 질서를 훼손시키지 않을 의무를 지닌 존재로 평가절하되어버린다. “교사가 세금을 먹는 이상 국가를 제창하는 것은 당연하다!” 헌법에서 보장되는 여러 자유들은, 일본 사회에서는 꽤나 먼 얘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3.
오사카 유신회에 대한 지지는, 3.11 지진재해 이후 나타나는 파시즘의 한 경향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전체주의화 경향은 다른 부분에서도 관찰된다. 2012년 3월 11일, 그러니까 지진재해가 일어난지 딱 1년이 되던 일요일에, 일본 트위터에선 대단히 희한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웃기는 내용의 트윗을 올리던 사람들에 대해, 일부에서 “불근신 (不謹慎)이다”라는 비난이 나온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이 날에 어떻게 그런 경박한 트윗을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3월 11일이 생일인데 친구로부터 “이런 날에 생일을 축하하는 것은 불근신 아니냐”라는 말을 듣고, 이 날 태어난 것도 죄냐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개인의 자유나 권리에 대한 의식이 대단히 빈약한 일본 사회는, 그만큼 전체주의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는 세계 2차 대전 전의 “멸사봉공 (滅私捧公)”의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다. 개인을 희생하여 사회에 바친다는 이런 이데올로기는 전후의 따라잡기 정책에서도 기업에 모든 걸 희생하며, 심지어 과로로 죽어가면서까지 일을 했던 비극적인 현상을 불러오기도 했으며, 집단에 더 이상 필요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거나 잘 맞지 않는 개인을 철저히 잘라내버리는 이지메 현상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게다가 인권이라는 가치에 대한 고찰이나 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심지어 ‘개인의 가치와 책임’을 다뤘던 전후의 교육 기본법을, 일본 전교조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 치부해버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반동이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까지의 관리교육 강화로 나타났고, 90년대 이후의 이지메와 학급 붕괴를 낳았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불근신 해프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들이 이렇게 생각하니 모두가 이렇게 생각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건 모두에게 이익이다”라는 오만한 착각이,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집단적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다. 집단의 폭력이다.
한국이 총칼을 든 정부에 의해 ‘강제로’ 사상을 억압받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일본은 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사상을 통제받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앞서 말한 ‘멸사봉공’이 그 예다. 전후 피폐해진 나라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패전국 일본은 미국에게 많은 간섭을 받았고, 이에 따른 피해의식이 없지 않다. 국가를 재건하고, 빠른 경제 성장을 일구는 가운데 국민들은 ‘선진국 일본 국민’으로서의 가치관을 내면화했다. 그리고 일본이 그토록 빠른 성장을 이룬 이유는, 다름아닌 일본인의 ‘높은 단결력’, ‘높은 충성도’, ‘높은 근면성’ 등이라고 (사실이 어떻든간에) 믿게 되었고, 이런 ‘미덕’이 현대 일본 사회의 집단주의를 강화한 듯하다. 미국의 개인주의 사상이 보다 늦게, 얕게 들어오게 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니었겠는가. 결국 개인을 억압하게 된 주체는 한국의 국가보안법 같은 인위적인 수단이 아닌,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이었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집단(국가)의 공 (公)이 국민 개개인을 위한 공공 (公共)과 일치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국가 혹은 집단의 이익과 개개인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 집단을 위한 노력이 결과적으로 개인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공리를 위해 희생되는 개개인의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생각해보면 썩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특히 지금과 같은 경우, 즉 집단을 위해서 개인의 인권, 즉 사상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경우, 집단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과는 더더욱 괴리되고, 개인이 감수해야 할 희생은 더욱 더 커진다. 이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없고, 분명히 올바르지 않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의 이런 경향 –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필연으로 보는 경향 – 은 점차 증대하고 있다. 나는, 심지어 개인의 감정까지 집단의 힘으로 제약하려고까지 하는 이런 경향이 대단히 두렵다.
3.
앞서 말했듯, 3.11 지진 이후 일본의 TV에는 ‘힘내자, 일본’ ‘우리는 할 수 있다’ ‘동일본을 응원하자’ 등, 집단의 힘과 협력을 강조하는 선전이 쏟아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것들은 국민의 시선이 사건의 본질을 향하지 못하게 주위를 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정부는 “비밀보전법”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사건과 관련해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기는 커녕 지속적으로 정보를 은폐하고 축소하려 했다. 이런 일련의 모습들은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고, 특히 최근 제기되고 있는 “4년 내 대지진설” 등은 안 그래도 방사능 때문에 불안한 일본 국민들을 더욱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개인의 가치보다는 국가와 전체 집단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어떤 ‘유능한’ 지도자에 복종하는 것으로 개인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파시즘이 대두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지난 2008년 경제 위기때 유럽에서 갑자기 파시즘이 인기를 얻었던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일본에서의 파시즘은 심상치 않다. 2월 28일, 자민당은 헌법개정원안을 작성하고 이를 발표했는데, 이에는 천황을 ‘원수’로 하고, ‘자위군을 창설’하고, 수상에게 ‘긴급사태’를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등, 보다 권위적이고 국가주의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 지금 일본은 마치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체주의 국가로 회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 대단히 강하다. 무서울 정도다.
인권보다 국가의 가치가 우선하고, 집단을 위해 개인의 가치가 희생되는 것이 당연하게 되는 순간, 군국주의의 망령은 되살아날 것이고 재앙은 반복될 것이다. 하시모토는 이러한 부정적 변화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개인의 권리, 개인의 가치, 자유와 인권, 국가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는 것. 불안에 휩싸인 일본 국민들이 전체주의의 마약으로 정신을 잃지 않으려면, 국가보다 우선하는 가치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 그리고 자각이 필요할 것이다. 국민들이 언제 하시모토와 오사카 유신회가 지닌 큰 문제와 자신들이 포기해왔던 것을 권리들을 발견하고 되찾는지, 나는 더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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